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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그럴땐 누군가 안아 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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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막연한 생각에, 30살이 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그린 30살은 사회활동을 하는 독립된 인간 개체人間이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으며 아마 결혼을 했다면 한 집안의 가장 혹은 적어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겠지. 젊은 애들이 하는 시시콜콜한 고민들-같은 클래스의 재수없는 친구랑 마주치기 싫다던가, 동생이 내 말 안 듣고 개긴다거나, 어머니 코고시는 소리에 밤에 공부에 집중을 못한다거나 이런 것들-은 이제 안녕, 하나의 어른으로써 제법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민들을 하겠지. 뭐 이런 정도랄까.

그런데 막상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묶여 경력이 쌓이고. 28살이 29살이 되고, 29살이 30살이 되어보니까. 30살이라는 것은 단지 나이만 먹은 것일 뿐이야. 아니아니, 좀더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 내 인생에 대한 설계도 보다 진지하게 해야하고 내가 있는 분야에서의 경력관리도 필수. 저축은 기본이고 추가적인 재테크 공부도 해야지. 동기들 하고 월급 비교, 직급 비교하면 인생 헛사는 거 아닐까 하는 조급한 마음도 생기고. 결혼도 해야지. 회사에 마음에 안드는 꼴통들로 가득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아파. 디스크가 아닐까. 이번 달에 자동차세 나와서 생활비가 빡빡해......


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이런 고민들이 서해 갯벌에 세발낙지 처럼 내 마음 속에 상처를 내고 마음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도, 반복되는 찌든 일상속에 무뎌져, 마음이 굳은 살처럼 딱딱해지는 거야. 칼로 긁어내도 긁어내도 새로 자라는 그런 굳은 살 처럼.

그런데, 아무리 어른이라도(솔직히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할지는 모르겠어) 어느 한순간 그 굳은 살이 약해질 때가 있는 거야. 칼로 긁어낸것도 아니고, 그냥 옆에서 살짝 눌렀는데, 그게 속살 신경을 눌렀는지... 아무 이유없이 야근 후에 퇴근하는 버스 간에 앉아 기사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 프로 사연을 들으면서 눈물 질질 짜고 있는거야.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지.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어디서 부터 잘못된걸까. 도대체 내가 어디서 뭘 해야할까.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부시시한 머리를 긁으며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지. 일상으로 돌아와. 단단한 굳은 살로. 30살이니까.

2005/09/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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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가을, 30살의 나는 저런 고민을 했나 보다.

이제 나는 32살이 되었고, 굳이 달라진 것을 찾는다면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였고 연봉은 쥐꼬리만하게 올랐다. 근로소득 원천징수자는 두 번 바뀌었다. 야근하고 버스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내가 어디서where 무얼what해야할지' 를 누군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정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 what to do는 정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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