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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유희

my way

지난 현충일날, 오랜만에 TV에서 평일 저녁시간 대의 교양/오락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이경규가 진행하는 7옥타브라는 프로그램으로, 보통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칠 옥타브]라고 말해야할 것 같지만, [세븐 옥타브]라고 자신을 밝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어떤 이슈에 대한 각 연령층의 인지도를 조사한 후,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연령을 상식 나이라고 표현하고 있었고, 그 이슈를 몇몇 추상적 힌트를 보여준 후, 다양한 연령 층을 이루고 있는 출연 게스트들에게 맞추도록 하고 있었다.


상식 나이 37세.
첫번째 힌트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마이웨이my way.


웬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OB베어스 혹은 두산베어스의 팬이 아니라도, 은 my way가 바로 불사조 박철순이 17년이라는 그의 국내 프로야구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흘러나온 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TV속 게스트들이 하나 둘 씩 정답을 맞추고, 이내 화면에는 박철순의 영상이 흘러 나온다. 영상은 그의 자취들을 시간 순으로 모아 만든 것으로, 그가 누구보다도 가장 화려했지만 짧았던 그 절정의 순간에서 내려오는 장면-타구에 부상부위를 맞아 마운드에 쓰러지는 모습이 나온다. 아내가 내게 묻는다. 자기도 저때 기억나?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아내에게, 그가 어떤 선수였는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을 해주려 했다. 그가 미국 프로야구 AAA에서 뛴 최초의 한국인 이었다는 것, 그리고 OB베어스가 원년 우승할 때 한국시리즈 MVP였었고, 한시즌 2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가 허리부상으로 무릎을 꿇었다는 것. 2년 뒤 부상에서 복귀한 그에게 김모 감독이 연이어 투수 앞 번트를 고의적으로 시도했다는 것.(김모 감독은 2년전까지 OB베어스의 감독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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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사람인지... 응원하는 팀을 떠나, 아니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서, 한마디만 더 하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박철순은 프로통산 231경기를 뛰어 76승 53패 20세이브, 통산 방어율 2.95를 기록했다고 한다. 두번째 말하지만, 나는 OB/두산 팬이 아니어서 이런 사소한 수치들을 외우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은 박철순이 남긴 커리어가 초특급, 시쳇말로 레전드급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승 32위, 세이브포인트(not 세이브) 39위, 투구이닝 46위, 평균방어율 5위.

82년 박철순은 정말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투수였다. 그는 이 때 그가 가진 모든 수상을 기록하는데, 다승 방어율 승률 등 투수부문의 타이틀을 가져가고 MVP를 수상한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로 83년 시즌을 뛰지 못하고, 고작 그 해 마지막 경기에 팬서비스 차원으로 등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팬 서비스는 길게 가지 않았다. 바로 그 경기 1회 1사 상태에서 타구에 부상 부위를 맞고 마운드 위에서 쓰러졌다. 그 다음 해인 84년에 그는 다시 돌아왔지만 85년 9월 다시 허리통증으로 그라운드를 잠시 떠났다가 86년 다시 일어나서 13경기동안 5승 3패를 기록한다. 88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운동의 영역이 아닌, 정상생활의 영역을 위협받는다.

하지만 그는 악착같이 다시 던지기 위해 일어난다.

박철순은 33세가 되는 89년, 650일만에 다시 승리 투수가 되었고
90년, 1500일만에 완봉승을 기록한다. 그리고 ,지금이야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송진우에 의해 다 갱신되긴 했지만, 94년까지 그가 완봉승을 기록할 때 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깨는 것이었다.
94년에는 개인 최다 기록인 한경기 11탈삼진을 기록한다.
95년에는 39세 7개월 8일로 한국시리즈 최고령 등판 기록을 갈아치우고, 조카뻘 되는 후배들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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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에서 그를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그가 최고의 투수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서 '보통 사람'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그에게 열광한다. 그가 가진 22연승의 대기록보다, 최고령 등판 기록, 최고령 승리 기록에 우리는 더 애정을 느낀다.

그는 정말 열심히 던졌다. 그리고 다시 못일어나도 충분히 이유가 될만한 시련을 겪는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고 동시에 내 아버지의 모습이며 다른 누구, 다른 어떤 아버지라도 좋은, 모습이다. 그가 그 앞에 주어진 시련을 이겨내지 못했더라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못한다. 세상은 동시에 인생은 언제나 인간의 뜻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까. 비록 신은 이겨낼 수 없는 시련을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그는 최고였을 때 만큼 화려하지 않을 지언정, 기어코 다시 일어났고, 자신의 시련에 맞서, 싸워, 이겨냈다.  야구팬으로서,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much than more.